나너의 기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현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기억'에 관한 작품들이 세 가지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다.
Ⅰ. 나너의 기억
동시에 같은 현상을 겪었음에도 나와 달리 형성된 타인의 기억 앞에서 누구나 묘한 당혹스러움을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객관적이고 고정된 현상은 감각(시각 등)을 통하는 순간부터 주관성을 갖기 시작하고, 이것이 기억으로 발효되기까지 끊임없는 덧붙임과 망각과 재해석을 거치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기억이 각기 다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나너의 기억> 섹션에서는 이처럼 시각을 통한 기억의 발생에서부터 기억의 선택(및 탈락), 서로 간에 혼재되는 기억을 다룬 영상 작품들이 전시된다.
'우리는 잠을 자는 동안 그날 하루 경험하고 취득한 정보를 뇌에 저장하거나 삭제하면서 기억이라는 하나의 서사로 만들어낸다고 하죠. 그런 면에서 이 영상은 기억이 구성되는 과정을 은유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망막이라는 생물학적인 필터를 거쳐 뇌에 도착한 기억은, 우리 뇌의 구조라는 또 하나의 필터를 거치면서 삭제되거나 저장되는 과정을 통해 구조화 되는데요, 그 결과 실존하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속에서 왜곡되고 변형될 수밖에 없죠. 달리 말하면, 눈이라는 경계를 통해 들어온 외부의 세계가 우리의 안에서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구조와 뒤섞인다고 할 수 있는데요. 실재의 현실과 기억 속에서 구현된 장면 사이에 발생하는 괴리에 주목하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내면과 외면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인간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 사이의 공간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라쇼몽이 생각나던 작품
Ⅱ. 지금, 여기 / Ⅲ. 그때 그곳
우리의 정체성 즉 '지금, 여기'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때, 그곳'이 먼저 규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실존하며 목도하는 것은 직접 본 대로 기억하면 그만이지만,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그때, 그곳'의 상황은 그것을 직접 겪은 자들의 기억을 대물림 할 수 있을 뿐이다. ('간접적인 기억'이라고 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몇 개의 질문이 생긴다. (질문1) 우리가 전(前)세대로부터 대물림 받은 기억은 무엇이며, '지금, 여기'는 후대에게 어떤 방식으로 기억될까? (질문 2) 우리가 미처 직접 경험하지 못해 상상으로만 유추할 수 있는 기억의 빈틈은 어떻게 채워나갈 수 있을까? 이것이 두 섹션에서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그리고 가장 뭉클했던 섹션... 공업단지 노동자 분들의 첫사랑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녹화하고 이 이미지를 함미나 작가님이 그려내는 형식의 영상작업이었다. 인터뷰 전에 사랑에 대해 물어볼 거란 예고가 없었는지, 질문을 받고나서 다들 당황해하는 분위기였는데 첨엔 낯부끄러움에 절레절레 하다가도, 기억 하나하나를 회상하면서 변화하는 표정에서 행복과 회한이 느껴지면서 그거 자체로 참 아름다웠다.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그저 지나치고 말 법한 나와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을 구성하는 서사를 알게 되면 그 순간 잠깐이나마 특별한 존재가 된다. 그것도 사랑얘기라면 더더욱.
동시에 내가 훗날 이런 인터뷰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의 사랑을 어떻게 떠올릴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뭉클하고 저릿해오는데, 적어도 못해준 것에 대한 후회는 남지 않도록 더 솔직한 사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